[강미유의 ailleurs] 우리 아이들에게 잠을 선물하자

강미유 기자 / 기사승인 : 2023-11-21 10: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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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113분 |각본·연출: 김태훈 |배급: 찬란

  영화 '빅슬립'
[칼럼니스트 강미유] 어릴 때는 잘 안 자면 키가 안 큰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충분히 자야 몸에 생기는 각종 염증을 막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다. 그러다 보니 밤새 TV도 보고 싶고, 술도 마시고 싶고, 친구랑 놀고도 싶지만 자제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수업 시간에 혹은 회사에서 졸다가 “밤에 뭐하고 낮에 조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빅슬립’도 바로 이 질문에서 비롯됐다. 각본도 직접 쓴 김태훈 감독은 과거 예술강사 일을 하던 무렵, 매번 뒷자리에 앉아 잠만 자는 한 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그를 불러서 “수업이 그렇게 재미가 없느냐, 왜 잠만 자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난밤에 술에 취한 아버지가 무서워서 밤거리를 서성이다 잠을 자지 못했다”며 사과를 했다.

 

  영화 '빅슬립'

김태훈 감독은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수업 중에 그 아이를 깨울 수가 없었다. 내 어쭙잖은 수업보다 잠시라도 고이 잘 수 있는 시간이 그 아이에겐 더 필요해 보였다”며 “그 후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그때 그 아이의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빅슬립>이라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고, 영화를 빌려 잠이 모자랐던 그 아이에게 깊고 따스한 잠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빅슬립> 속 소년 길호(최준우)도 폭력을 행사하는 새아버지를 피해 거리로 나와 걷고 또 걷는다. 어둠과 추위를 피할 장소를 찾아 헤매지만 세상은 그것마저 불법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기영(김영성)은 대가 없이 공간을 내어주고, 끼니를 챙겨준다. 길호는 기영의 거친 말속에서 훈계도, 동정도 아닌 낯설고 따뜻한 감정을 마주한다.

 

김태훈 감독은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조차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며 “<빅슬립>을 통해 뭔가 거창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기보다 그저 타인을 향한 다정한 말 한마디가, 따뜻한 밥 한 끼가, 눈웃음이, 가만히 옆에 있어 주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멋진 일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빅슬립'

|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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