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유의 ailleurs] 객석 자리가 아닌, 가부키 무대 위에서 보는

강미유 기자 / 기사승인 : 2025-12-11 11: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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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75분 |감독: 이상일 |배급: (주)NEW

  영화 '국보'
[칼럼니스트 강미유] 이상일 감독의 일본 영화 <국보>가 3시간(175분)에 가까운 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 19일 개봉 이래 22일 동안 15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개봉 첫 주 스코어가 절반인 7만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주차에 상영관 감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셈이다.

 

영화를 실제 본 관람객의 반응은 주요하게 2가지다. “3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졌다”와 “한 번쯤 가부키를 직접 보고 싶다”. 반면에 실행력이 좋아 곧이어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을 통해 실제 일본의 국보 연기자가 연기하는 2~3시간짜리 가부키 공연을 보면 “지루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영화 <국보>가 그만큼 가부키 공연 장면을 흡인력 있게 연출됐다는 점이겠다. 무대 장면의 촬영 방식, 리듬이 인물의 심리와 예술 세계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방식 덕분이다.

 

촬영은 가부키 무대를 현실과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설정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인물이 인간에서 예술의 매개체로 변모하는 양상을 강조한다. 이때 카메라는 무대 위 인물의 얼굴과 손짓, 발놀림을 극도로 밀착해 담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시 먼 거리에서 인물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대비를 만든다. 이러한 시점 전환으로 예술의 절정과 사적 삶의 결핍을 교차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 올려놓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배우 어깨너머로 객석을 보게 하거나, 무대 가장자리·스폿 조명 안쪽에서 인물을 따라간다. 영화 관객은 공연의 전통적인 관람자 자리에서 벗어나 배우와 같은 시선으로 객석을 내려다보며, 공연의 긴장, 호흡, 두려움이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전이되는 경험을 한다.

 

  영화 '국보'
 

클로즈업은 특히 감정 전달의 핵심이다. 카메라가 가부키 특유의 굳어진 표정보다, 그 표정이 완성되기 직전의 미세한 눈 떨림, 숨 들이마시는 순간, 땀과 분장이 엉기는 피부 질감을 과감하게 확대한다. 퍼포먼스로서 연기가 아니라, 그 연기를 버티는 인간의 떨림이 전면에 드러나고, 가부키의 형식미 뒤에 숨은 공포·집착·쾌감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배우의 호흡·시선·땀방울 클로즈업은 가부키를 보는 예술에서 느끼는 감정 드라마로 치환하는 핵심 매개가 된다.

 

리듬에 있어서도 가부키 장면은 실제 공연처럼 길게 끌되, 롱테이크로 동작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배우의 호흡과 함께 시간을 통째로 체험하게 한다. 반대로 무대 밖 장면에서는 컷을 쪼개고, 장면 전환이 빨라진다. 도시 풍경과 대기 샷이 늘어나면서 인물의 고독과 소외가 강조된다. 이 리듬 차이가 무대 위에서 찰나의 성취감과 일상에서 긴 허무를 극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이상일 감독은 “가부키 공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 위·뒤에서 예인을 집어삼키는 노동과 욕망, 질투 같은 감정까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공연 장면의 화려함과, 막이 내린 뒤 분장을 지운 얼굴에 남는 허무와 고독을 의도적으로 대비해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국보'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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