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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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쑥스럽거나 부끄러운 느낌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뮤덕(뮤지컬 덕후)’을 자처하고, 시집도 종종 펼친다.
좋은 공연이 많이 오르는 연말, 행복한 고민을 하며 좋아하는 공연 한 편을 봤다.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책도 한 권 샀다. 제목이 귀여운 책이다. <사랑은 즐거워 시는 대단해>는 ‘시 사랑’ 가득한 인스타그램 계정 ‘포엠 매거진’을 운영하는 배동훈이 썼다.
저자는 마흔일곱 개 구절을 골라 좋아하는 마음을 꺼내 놓는다.
박참새 대담집 <시인들> 세미콜론, 2024
이 시대에 시를 읽는다는 일이 아무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구석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
끝끝내 모여 살벌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고도 믿는다.
(65페이지)
이 책은 시집 전체를 소개하지도 시인 세계관을 분석하지도 않는다. 어느 날 읽은 시 한 줄, 그날 자기 이야기를 나란히 놓는다.
저자는 말한다. 시 전부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 줄만 마음에 닿아도 충분하다고. 오히려 그 한 줄이 전체를 설명한다.
시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과 닮았다. 처음 만난 사람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 필요가 없듯 시도 마찬가지다. 한 문장이 마음을 흔들었다면 그걸로 시작하면 된다.
그 문장이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없어도 괜찮다. 그 시인의 다른 작품을 전혀 몰라도 괜찮다.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시를 곁에 두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기억나는 구절 하나면 된다. 힘든 날 떠올릴 수 있는 문장 하나. 웃게 만드는 표현 하나. 그게 바로 시를 읽는 일이다.
유수연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문학동네, 2024
급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급 마음이 아팠다 이건 가짜 마음이란걸 알아
운동을 하러 갔다 사랑해주는 사람보단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
저자가 시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가볍다. 무거운 문학 담론도 학술적 고찰도 없다.
“이 구절 읽었을 때 좋았다”는 고백만 있다. 읽는 동안 내내 나는 이 고백이 좋았다. 이런 가벼움이 오히려 시를 깊게 만든다.
이 책 역시 그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 시는 어렵지 않고, 재미있으며, 누구의 삶에도 스며든다.
오랜만에 어떤 대상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책을 만났다.
책은 다른 책을 불러온다고 했던가. 이 책을 덮자 다른 시집이 궁금해졌다. 내 장바구니엔 몰랐던 시집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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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표1’보다 ‘표4’를 좋아하는 북디자이너. 인스타그램 디자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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