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낭만이여, 돌아오라!

강미유 기자 / 기사승인 : 2025-10-22 00: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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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지켜주었다 |저자: 이재익 |출판사: 도도서가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박단비] 아직도 생생하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앞사람이 전화 끊기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순간, 전화가 끊어질까 동전을 밀어 넣으며 수화기 너머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음악방송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앉던 순간이나 라디오를 듣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하던 순간,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친구가 나타날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순간들 말이다. 지금보다 덜 효율적이었고, 덜 편리해서 낭만 있던 그 시절. 나는 그 시절이 가끔 그리워진다. 

우리는 과거보다 조금 더 편하고, 실리적인 세상에 살게 된 대신 낭만을 잃었다. 완전히 잃은 건 아니지만, 이전에 비하면 낭만 농도가 현저히 옅어졌달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뭔가를 얻어내려던 뜨거움, 실수를 감내한 치기 어린 도전, 소소하게 찾아내던 행복과는 조금 멀어졌다. 다르게 말하면, 낭만을 즐길 여유가 사라졌다. 

이재익 작가 신간 <시가 나를 지켜주었다>는 바닥에 떨어진 낭만 농도를 끌어올리는 책이다. 책에는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영시 작가의 시 약 53편이 담겨있다. 

물론 시만 담겨있지 않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 웹툰&웹 소설 작가, 카피라이터, 라디오 PD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저자가 센스 있고 유쾌한 자신의 언어로 53편의 영시를 풀어낸다. 자칫 복잡하고 어렵고 불필요해 보이는 단어 사이에서 저자는 용케도 온갖 감정들을 찾아낸다. 절절한 사랑, 벅차오름, 애달픔, 짙은 슬픔과 고독, 우리가 잃어버린 낭만까지도. 

이재익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낭만의 기록이다. 분명히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운 적이 있었고, 어쩌면 아직도 남아 있으나 너무 오래 살피지 않아 시들해진 특별한 감정에 관한 얘기다. 이 책은 열정에 찬 선언이자 우울의 고백이며, 열정과 우울의 끝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위험한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글을 담은 책이다. 

지나온 삶의 모퉁이 어딘가 중요한 것을 놓고 와버린 것 같아 속상한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시에 큰 관심이 없어도 좋다. 나 역시 시를 많이 좋아하지 않고, 영시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모국어로 쓰여있는 시도 제대로 이해가 안 되는데, 영어로 된 시는 어떻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괜찮다. 시에 관심이 없어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된다. 저자가 쉽게 잘 번역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도 적당한 무게로, 적절한 양으로 보기 좋게 담아냈다. 우리는 그저 숟가락을 들고, 소복하게 담아 천천히 음미하면 된다.

영어에 자신 있는 사람은 저자의 번역과 함께 담긴 원문 영시까지 즐기면 된다. 저자의 번역을 원문과 비교하며 읽거나 원문만 따로 곱씹으며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 가는 재미도 있다. 여러모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낭만을 잃었을까? 언제부터 적확하고 필요하고 합리적인 말만 하게 되었을까? 매일 보는 메마르고 뾰족하고 군더더기 없는 말이 아닌, 중언부언도 했다가 우왕좌왕도 했다가 배배 꼬고 돌려가며 던지는 말속에서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보자.

<시가 나를 지켜주었다> 저자 이재익이 선물하는 낭만 과다 영시를 읽으며, 부디 오늘은 당신도 흠뻑 젖어들길.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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