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유의 ailleurs] 스타일이 인상적인 여름 호러 영화 ‘다섯 번째 흉추’

강미유 / 기사승인 : 2023-07-27 17: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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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흉추 / 65분 / 감독·각본·촬영·편집 박세영 / 배급 인디스토리 / 2023 베를린 비평가주간

[칼럼니스트 강미유] 여느 때보다 길고, 잔뜩 쏟아졌던 여름 장마가 끝났다. 눅눅한 시기에 찾아오곤 하는 곰팡이 혹은 균류가 오는 8월 2일 개봉하는 영화 ‘다섯 번째 흉추’에서 이렇게 정의된다.

 

균류는 종마다 큰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수명이 매우 짧다. 어떤 종류는 하루를, 다른 종류는 일주일에서 한 달 사이를 생존한다. 물론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다.

 

박세영 감독은 자신의 원룸에서 곰팡이를 보며 헤어진 연인의 매트리스에서 피어나 사랑과 슬픔을 먹고 자란 곰팡이 꽃이 인간의 척추뼈를 탐하며 생명체가 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인간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분출 혹은 배설되는 사랑과 증오, 분노와 연민, 다정함의 감정을 양분 삼아 생명체로 성장해가는 곰팡이의 여정이 생명의 본질과 부유하는 인간의 삶을 섬세하게 통찰한다.

 

이 같은 독특한 상상력을 온전히 만들어낸 것도 박세영 감독 자신이다. 각본과 연출은 물론 촬영과 편집까지 소화하며 첫 장편을 완성했다. 타임랩스 기법을 활용해 구현한 곰팡이의 탄생 장면은 무한한 시간성이 처연히 느껴지도록 공들여 연출했다.

 

 

박세영 감독은 “생명체의 운동성을 최대한 살려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 께름칙한 느낌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게 목표였다”며“1980년대 공포영화와 B급 장르영화의 세계적인 거장인 존 카펜터 감독 영화 ‘크리처’를 레퍼런스로 삼아, 다양한 텍스처를 섞어 침대 매트리스 곰팡이가 인간 모습과 가까운 생명체로 변태하는 장면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매트리스는 아직 곰팡이가 태어나기 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추운 겨울, 함박눈을 맞고 축축한 상태의 매트리스가 물기를 머금고 원룸으로 옮겨진다. 연인 결(문혜인)과 윤(함석영)은, 매트리스 위에서 사랑과 증오를 표출하고, 곰팡이는 두 사람의 모든 감정을 흡수하며 습기와 함께 탄생한다. 그렇게 탄생한 곰팡이는 처음으로 인간의 흉추를 먹는데 바로 윤의 흉추다. 그가 가장 먼저 배운 말이 결이 무심한 남자친구 윤에게 뱉은 “죽어”라는 말인 까닭인지, 그가 기생하는 매트리스 주인이 결이어서 인지는 모를 일이다.

 

매트리스의 두 번째 기착지는 화려하지만 값싼 모텔. 이번에는 이별을 앞둔 연인 율(온정연) 과 준(정수민)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오롯이 흡수한다. 이 복잡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배운 적 없는 곰팡이는 두 사람 흉추를 모두 취하며 생명체가 돼간다.

 

박세영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왜 이런 영화를 찍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고등학생 때부터 매년 영화 한 편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영화는 돈과 노동력, 사람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여태까지는 단편만 찍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배워온 방식을 적용해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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