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

북에디터 한성수 / 기사승인 : 2025-09-17 13:52:11
  • -
  • +
  • 인쇄
경험의 멸종 |저자: 크리스틴 로젠 |역자: 이영래 |어크로스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한성수] 극성 더위에 몇 차례 탈이 난 후 건강 정보를 즐겨 찾는 내게 알고리즘이 신문물 하나를 소개해줬다. 

작년에 일본에서 개발됐다는 전기 소금 숟가락(Electric Salt Spoon)이다. 음식을 떠서 입에 넣으면 미세한 전류가 음식 속에 분산된 나트륨 이온을 혀 근처로 끌어당겨 짠맛을 증폭시킨다고 한다. 싱거운 음식을 짠맛이 난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염분 섭취를 30% 줄이면서도 일반식과 비슷한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벌써 제품으로 출시된 모양인데, 이렇게 간단히 뇌를 착각시킬 수 있다면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음식 맛이 나는 껌’이나 ‘핥아먹는 벽지’를 현실에서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지 싶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나트륨을 응축하는 수저로 느끼는 맛을 진짜라고 할 수 있나? 실제가 아니라도 뇌가 그렇게 그렇다고 하니 상관없나? 식재료 고유의 맛을 맛볼 기회는 잃는 게 아닌가?

기술 발전으로 확실히 우리 삶은 이전보다 편리해졌지만, 잃어버린 것도 적지 않다. 

역사학자이자 문화평론가 크리스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기술의 빠른 침투로 우리가 불편함이 아닌 인간다운 경험 그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강하게 경고한다. 

특정 유형의 경험이 우리 삶에서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상대방 눈을 직접 마주치며 대화하는 대면 소통, 손으로 직접 쓰고 그리는 행위, 무언가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 공공 영역에서 규범 지키기 등 주체적인 직접 경험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그 주장이 너무 극단적이라 살짝 거부감이 들지만, 아니라고 단언하지는 못하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앱 없이 길을 찾는 건 멍청한 짓이고, 메일로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만나 처리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지시어만 있으면 책 요약은 물론 웬만한 보고서도 5분이면 해결되는데, 굳이 머리를 써가며 쓰고 그릴 필요가 있나. 그럴 여유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살기 내버려두는 세상도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반증이라도 하듯, 여러 연구 사례를 소개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청소년의 53%가 자신이 선호하는 디지털 기술을 잃느니 차라리 후각을 버리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10대 절반 이상이 냄새를 맡지 못하는 불편함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없을 때 잃게 될 효용과 즐거움을 훨씬 큰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라며 되묻는다. “여기는 과연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인가?”

기술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페이스북과 별개인 실제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술과는 독립적이어야 할 것들이 위협받을 때, 그 세계를 기술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각 세계를 보호하고, 육체의 중요성, 물리적 공간의 완전성, 내면의 삶을 가꿔야 할 필요성을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여기에서 기계로는 만들 수 없는 것들이 나온다. 뜻밖의 행운, 직관, 공동체, 자발성, 공감 말이다.” (28쪽)

기술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세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일단 전기 소금 숟가락 따위는 잊고 먹을만한 저염식 식단을 챙겨봐야겠다. 심심한 간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지루하겠지만, 저자 말마따나 지루한 기다림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원적 경험일 테니. 

 
|북에디터 한성수. 내가 왜 이 일을 택했나 반평생 후회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서점이라도 발견하면 홀린 듯 들어가 종이 냄새 맡으며 좋다고 웃는 책쟁이.

[저작권자ⓒ 뉴스밸런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