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디자이너 강은영]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1년 차 전공의가 죽음을 앞둔 환자 자녀에게 자신의 경험을 비춰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사진이 있으니까 엄마 얼굴은 오래 기억하는데 엄마 냄새는 진짜 빨리 까먹어. 그러니까 엄마 옷 같은 거 오래 잘 갖고 있고.”
이 말 속에 감각이 기억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감각으로 세상을 읽는다. <감각의 박물학>은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이 예술과 철학, 인류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각 감각이 문화 속에서 어떤 관습을 만들었는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유사하게 작동했는지 살핀다. 관능적이면서도 경이로운 감각의 지도다.
시인이자 박물학자, 코넬대 인문사회학 교수인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얼마나 자주 감각에 집중하는가?
실제로 인간은 생각한 대로 느끼지 않는다. 느낀 대로 생각한다.
“냄새는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다.
(중략) 슬며시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다른 냄새들은, 내 마음을 기쁨에 녹아내리게도 하고, 슬픈 기억에 움츠러들게도 만든다. -헬렌 켈러” (15p)
헬렌켈러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감각적인 경험을 누렸다. 라디오에 손을 올려 음악을 즐겼고, 미세한 진동만으로 관악기와 현악기를 구분했다. 불굴의 의지로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며 살았다.
일상에서 우리는 감각을 당연하게 여긴다. 아침 커피 향기, 햇살이 닿는 피부, 빗소리를 무심히 지나친다. 애커먼은 이런 순간을 새롭게 경험하라고 권한다. 감각은 단순한 신체 기능이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삶을 느끼는 통로다.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이다.” (221p)
우리가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기뻐하는 모든 순간이 감각에서 시작한다. <감각의 박물학>은 과학적인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문장으로 사실을 환기시킨다.
“인간 몸의 구조는 음악을 듣는 데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듯, 음악은 인간의 몸을 통해 아름답게 쏟아져 들어온다.” (379p)
이 책은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라 감각 자체를 경험하게 만든다. 감각이라는 창을 열어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는 법을 알려준다.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7p)
작업실 앞 카페에서 이 글을 쓰다 잠시 고개를 든다. 커다랗게 펴놓은 붉은 파라솔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흔들고, 사방으로 커피향이 흩어진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고소한 카페라테 맛이 달콤하다. 계절이 바뀐 냄새에 짧아서 애틋한 가을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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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 '표1'보다 '표4'를 좋아하는 북디자이너. 인스타그램 디자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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