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우리 시대 가장 큰 공포는?

북에디터 정선영 / 기사승인 : 2023-10-18 0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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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공포 |저자: 비비안느 포레스테 |역자: 김주경 |동문선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정선영

[도도서가=북에디터 정선영]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과거 비디오 테이프를 틀면 맨 처음 흘러나오던 경고문이다. 분명 호환 마마 전쟁이 공포의 대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2023년인 지금도 지구 한쪽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사회 20대 이상에게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난, 빈곤 같은 경제적 어려움 아닐까?

 

엄밀히 말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경제적 공포란, 실업이나 실직에 따른 공포이며 이어지는 무능력자나 낙오자라는 낙인, 인간으로서 효용 자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말한다. 이 공포감을 조성하고 유지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굴러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노동 위에 유일한 기준과 기초를 세우려고 고집하는 사회 속에서, 노동의 소멸이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미지, 거기에서 아마도 우리 사회의 공포에 질린 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예감한 이 이미지는, 우리의 공포를 더욱 자극한다.”

 

생각해보자. 여러 전문가가 말하듯, 고용을 바탕으로 한 노동 시장은 소멸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용을 토대로 한 모순적 노동시장에서 남아 있는 일자리는 그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저임금의 애매한 일자리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특정 교외지역에서 더욱 악화되어 있다.

 

“교외의 빈민가에서 태어남으로써 출생 전부터 이미 지리적 조건 때문에 버림받은 채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아주 탁월하게 ‘쫓겨난 자’들이다.”

 

“그들의 삶이라는 선박은 바로 여기, 명백한 불공평과 불평등 속에 닻을 내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특정 교외지역은 사실 게토라 불리는 곳이다. 원래는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놓은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가리켰던 말이다. 하지만 최근엔 소수민족이 다수 모여 사는 특정 지역을 일컫는 말로 확대됐다.

 

이를 우리 사회에 빗대본다면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 지방에서 갓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서울 변두리 지역쯤 되지 않을까.

 

나는 80년대 초반 인천에서 태어나 10대 초중반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성인이 된 후 2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다. 성인이 되었을 무렵 가족이 서울에 살게 되면서 나 역시 자연스레 이곳에 살게 됐다.

 

하여 수도권과 서울에서 살아왔기에 나 홀로 지방에서 상경하여 변두리 월세로 주거를 시작하는 삶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내 부모님이 지방에서 갓 상경해 내가 태어나기 전 자리 잡은 인천이나 그 후 서울 생활도 어느 의미에서든 중심부였던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짧지 않은 오르막길 끝에 다다르는 볕이 잘 들지 않는 삶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다.

 

변두리 삶이란 참아내는 삶이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체념하는 삶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잉여 인간이 된다.

 

저자는 질문한다. “살아갈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한가?”

 

이어 이렇게 덧붙인다. “권력과 재산, 그리고 당연하다고 공인된 특권을 소유하고 있는 극히 적은 무리의 소수인들은 이미 자동적으로 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들이 살아남을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사회에, 그리고 그 사회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경제구조에 ‘유용한’ 자들임이 증명되어야 한다.”

 

노동과 실업, 양극화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이 책은 1996년에 발행되었다(국내 초판은 1997년). 출간된 지 25년이 넘었지만 저자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어떤 관점에서든 한번쯤 의문을 가져봤다면 일독을 권한다.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인스타그램 도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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