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유의 ailleurs] 다큐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강미유 기자 / 기사승인 : 2024-08-04 19: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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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여공의 노래 |83분 |연출: 이원식 |배급:시네마달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

[칼럼니스트 강미유] 일본 오사카 하면 드라마 <파친코>를 먼저 떠올린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처럼 가난한 이민자가 타국에서 범죄(또는 사행사업)에 가담하게 되는 그런 영화 같은 이야기.

 

이원식 감독은 그런 오사카에서 다른 이야기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가져왔다. 2017년 초, 일 때문에 가게 된 오사카에서 이 감독은 어느 중학교의 붉은 담장 위에 세워져 있는 오래되고 낡은 십자가를 보았다. 그 녹슨 십자가가 궁금해 오랜 시간 조사하던 중 그것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간 조선인 여공들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설치하기 위한 지지대였다는 걸 알게 됐다. 1920~1930년대 10대 어린 소녀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사카 방적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사연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

영화 제목은 조선인 여공들이 불렀던 동명 노동요에서 가져왔다.

 

“자 우리 여공들이여 오늘 일과를 말해보자.

밤중에 한밤중 깊은 잠 들 때 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눈뜨고 머리 빗으며 세수하고

식당에 가면 먹을 시간 없어 된장에 밥 말아 쑤셔 넣듯 먹고

공장으로 가면 먼지가 하얀 산 같이 일어나고

전등을 태양 삼아 산 같은 하타를 끼고 시간이 되어

기숙사 돌아가면 빈방에 들어가네.

그래도 우린 또 하루를 살아가네.”

 

영화는 과거 오사카의 방적 공장 터를 찾아가는 재일코리안 4세 여성 프리젠터의 시선으로,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따라 100년 전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방적공장 조선인 여공은 대부분 10대였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에서 2교대로 일하던 어린 여공 생활은 고단했다. 급료는 적었고, 식사는 볼품없었다.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작업장 분위기에 시달려야 했으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

하지만 그들은 결코 우리가 지레짐작하듯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면 일본인이 ‘호루몬(오사카 사투리로 ‘쓰레기’라는 뜻)’이라고 부르며 쓰레기로 버리던 육류 내장을 얻어와 구워 먹었다. 또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면 서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야학을 열어 한글을 공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쟁의에 나서기도 했다. 노동권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았던 100년 전 노동자였지만 근로환경 개선과 부당해고 철회를 위해 선명한 빨간색 댕기를 매고 직접 일어나서 싸웠다. 일본 경찰과 폭력단이 여공들을 과격하게 진압당했지만 그들은 결코 지지 않았다.

이원식 감독은 “여공으로 일했던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며 “그분들 삶의 태도가 너무나 긍정적이라는 사실이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재일코리안 1세대 여성이자 어머니인 그분들은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과거를 끄집어 내면서도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기보다는 현재까지 살아온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며 “다큐는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말했다.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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