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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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줄거리는 이렇다. 야간 항공 우편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파비앵은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로부터 온 우편을 유럽으로 운반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 어느날 저녁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아름다운 저녁 하늘을 날고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공 우편국 지배인 리비에르는 업무에 있어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엄격한 원칙주의자다.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책을 줄이기 위해 그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다.
곧 칠레에서 우편기가 도착하지만 다른 두 비행기는 오지 않았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비행기 중 하나인 파비앵의 비행기는 예상치 못한 태풍 속으로 들어가고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리비에르도 태풍이 있는 것을 알고 파비앵을 안전한 장소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태풍이 워낙 커 비행기가 피할 적당한 장소가 없다. 그 사이 파비앵의 아내가 남편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사무실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리비에르는 여전히 냉정하다.
파비앵은 태풍과 싸움 끝에 태풍권에서 벗어나 조용한 빛 속으로 들어서지만 그는 알고 있다. 비행기 연료가 곧 떨어지리란 사실을. 리비에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파비앵이 실종되리라는 사실을. 하지만 리비에르는 명령한다. 파라과이에서 우편기가 도착하면 유럽행 우편기를 즉시 출발시키라고 말이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작품 전체에 진동하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신비로운 밤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실제로 이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는 기차, 선박 등의 수송 수단과 속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비행기 조종사들이 야간비행을 감행했지만 무모하고 위험한 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밤하늘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길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결말에 몹시 어리둥절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야간비행을 고수하고, 사고를 줄이기 위해 비인간적으로 감정을 배제하는 리비에르가 파비앵 실종을 알고 흔들리는 결말을 나는 원했는지도 모른다. 철저한 원칙주의자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리비에르는 파비앙의 실종으로 절망하면서도 멈추지 않는다.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을 향해 전진하게 하려면 때론 비인간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신념은 작품 속에 나오는 이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그 힘을 만들어내는 해결책은 뒤따라온다네.”
리비에르의 이런 모습에 치를 떨며 책을 덮었던 나는 그 후로 인생이 고달플 때마다 나도 모르게 결코 좋아할 수 없었던 리비에르 말을 떠올렸다. 어떤 때는 힘들어도 참고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해결책이 나타나주리라는 희망적인 말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때로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무런 빛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나아가는 것. 인생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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