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유의 ailleurs] 류이치 사카모토, 마지막까지 음악으로 존재했던 사람

강미유 기자 / 기사승인 : 2026-03-31 17: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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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96분 |감독: 오모리 켄쇼 |배급: 영화사 진진·더콘텐츠온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칼럼니스트 강미유] 영화 <마지막 황제>로 친숙한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생애 마지막 3년 6개월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가 오는 4월 1일 개봉한다.

 

지난 2020년 12월, 류이치 사카모토는 직장암 진단을 받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한다. 그때부터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는 뉴욕 자택 마당에 자연 실험용 피아노를 들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로부터 죽음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아가는 한 인간의 내면을 따라간다. “무엇을 보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슬프다”는 체념과 “과거를 후회해 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담담한 직시가 교차하며, 관객은 그의 쓸쓸함과 동시에 생의 감각을 함께 느껴본다.

 

가족이 보유하던 사적인 영상, 투병 중에도 멈추지 않은 소리 스케치, 그의 시선이 담긴 사진들이 촘촘히 엮여 서사를 이룬다. 거장이라는 타이틀 너머의 인간 류이치 사카모토가 어떻게 살아내고 마무리했는지를, 다큐는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이 다큐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간 일기를 중심에 뒀다. 암의 전이를 알게 된 절망, 매일 같이 음악을 떠올리던 뮤지션으로서 열의, 보름달과 구름을 바라보며 느낀 또렷한 감각들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일기 낭독은 류이치 사카모토와 생전 깊은 인연을 나눈 세계적 무용수이자 배우 다나카 민이 맡았다. 그는 “손으로 직접 쓴 글자이기 때문에 그때의 감정의 움직임이 전해졌다. 휘갈겨 쓴 부분도 있고 천천히 써 내려간 부분도 있었는데, 사카모토 씨의 몸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또한 그의 음악을 단순한 배경음악으로 쓰지 않은 점에 주목할 만하다. 각각 곡은 삶의 특정 순간과 맞닿아 있다.

 

대표곡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 주제곡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남은 시간 6개월이라는 현실을 마주한 독백 직후 흘러나온다. 1983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를 위해 만든 이 곡이 40년 후 작곡가 자신의 마지막을 배경으로 울려 퍼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로 다시 주목받은 ‘아쿠아’의 꾸밈없는 연주, <마지막 사랑> 주제곡이자 또 다른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통해 선보인 ‘더 셸터링 스카이’도 저마다 자리에서 공명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유작 앨범 <12>는 투병 중 일기처럼 기록한 음악 스케치들을 모았다. 그 작업 비하인드가 다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케냐, 그린란드, 쓰나미 재해 현장에서 채집한 소리를 오랫동안 앨범에 녹여온 그는 빗소리를 ‘완전한 형태의 음악’으로 여겼으며, 실제 그가 녹음해 둔 빗소리 음원이 영화 안에 사용됐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도 완성한 ‘피스 포 일리아’는 타인의 고통과 세계의 폭력을 끝내 외면하지 않은 그의 마지막 발언이었다.

 

1952년생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1978년 솔로 앨범 <Thousand Knives>로 데뷔, 같은 해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일렉트로닉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를 결성해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음악으로 전환은 1983년 <전장의 크리스마스>부터다. 1987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로 아시아인 첫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음악 밖에서도 환경과 평화를 위한 실천에 나섰다. 산림 보전 비영리단체 ‘모어 트리’를 설립하는가 하면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반원전 페스티벌 ‘노 누크’도 개최했다.

 

2023년 3월 28일,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오모리 켄쇼 감독은 “죽음과 마주하는 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뒀다”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창작을 향한 결의는 직업과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울림을 줄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때때로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영화 등 다양성 영화를 만나러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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