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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그런 헝가리의 외교·무역장관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 놀랐다. 국가이익과 정체성을 지키는 소신·용기는 거침없다. 어느 나라 눈치도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나라와의 고립도 반대하는 실용주의자. 국제정세에 대한 식견과 통찰력은 넓고도 깊다. 작은 나라 외교 수장이라면 굉장히 말조심을 할 것이란 선입견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놀란 것은 그의 나이와 정치경력. 45세. 그러나 장관 11년 차다. 정치경력은 벌써 26년. 다양한 경험 속에서 정치능력, 정책·행정능력을 길렀다. 지방선거에서부터 국회의원 선거까지 많은 선거를 치렀다. 정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에다 외교부 차관 등 차고 넘치는 경력을 쌓았다. 언젠가는 총리에 도전할지 모른다. 정상적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 나아가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을 차곡차곡 밟고 있기 때문이다.
■19세에 정치를 시작한 외교장관의 바이든 비판
그는 정치는 아무나,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평생 검사들이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고 느닷없이 집권 여당의 간판이 되는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많은 교훈을 준다.
시야르토 페테르 장관은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회견을 하며 바이든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의 허약함이 국제질서 안정을 무너지게 했다는 것. 미국 땅에서 미국 대통령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를 오히려 두둔한 유럽연합(EU)을 “위선자”라며 비판했다. 좌파 글로벌리스트들인 바이든과 EU가 우파 포퓰리즘을 추구하며 무슬림 등 불법이민자 수용을 거부하는 헝가리를 철저하게 압박하고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든, EU와는 달리 “전장엔 갈등 해결책이 없다. 희생자와 파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을 촉구했다.
사회주의 등 마르크스 이념을 반대하는 그는 좌파들의 이중성을 꿰뚫고 있다: “각국에서 많은 보수주의 정치인들이 검찰 공세와 정치 공격을 당하고 있다. 좌파 정치인들이 그런 일을 당하면 EU, 유엔 등이 일제히 ‘민주주의를 끝장내는 행위이므로 허용되면 안 된다’고 떠든다.
유럽연합을 장악한 좌파 주류들이 불행하게도 언론과 정치를 지배한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바른 접근법을 제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당장 러시아 스파이, 푸틴 동맹자, 크레믈린 선전이라고 공격한다. (좌파에겐) 합리가 통하지 않는다.“
페테르 장관은 19세 때 여당인 ‘피데스’에 입당했다. 그해 지방 시 의원에 최연소 당선, 의회 교육문화스포츠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24세에 최연소 국회의원. 현재 5선 의원. 당의 커뮤니케이션 국장과 청년조직 총재, 총리 대변인, 총리실 외교·대외무역관계 실장 등을 지냈다. 빅토르 오반 총리는 2012년 33세인 페테르를 8개 경제위원회 의장 겸 외교·무역 차관에 임명했다. 2년 뒤 장관에 임명했다. 아무리 어려도 페테르의 정치·정책능력이 검증되었기에 발탁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럽 등에서 30대 총리가 등장하면 ”세계는 젊은 피가 대세“라고 한다. 세대교체를 외치며 청년 우대를 주장한다. 잘못이다. 나이는 상관없다. 누구든 오랜 시간에 걸쳐 충분한 정치 경험과 정치·정책 능력을 쌓는 과정을 거쳤기에 총리로 뽑힌다. 낙하산으로 내려와 하루아침에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
60세인 오반 총리는 25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10년간 정치현장을 뛴 뒤 35세에 총리에 당선됐다. 42세인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38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도 32세에 정치에 뛰어들어 시장 선거에 두 번 당선된 경력이 있다. 그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지지도가 80% 밑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최고 96%까지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도 건설업자에서 바로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 30년 정치경력을 쌓은 뒤 대통령이 됐다. 1987년 공화당에 등록, 신문에 외교·경제정책에 대한 자신의 정견을 밝히는 전면광고를 냈다. 1999년 개혁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갔다.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는 연설도 했다. 공화당 부통령이 되려고도 노력했다.
미국·유럽에서 정치인이 되는 길은 간단치 않다. 미국 연방 의원이 되려면 오랜 기간 각종 지방 선거를 겪는다. 후보 경선에서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 여성, 청년이라 공천 우대를 하고 변호사, 연예인 등을 영입 인재라며 공천을 해주어 의원으로 만들어 주는 정치충원은 없다. 우리나라는 이런 정치행태 때문에 우수한 정치인들이 나오지 않는다.
정치인은 나라를 운영하는 전문 직업인이다. 핵심 의무는 국민들의 관심·요구를 듣고 반영해 법과 정책을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 정당 등 정치조직에서 일하거나 각종 선거를 겪어야 한다. 입법과 정책 수립, 선거 조직과 운동 방법, 전략 수립을 배워야 한다. 국민 여론을 듣고 반영하는 방법을 익히며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과 기술을 갖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본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능력과 책임성을 가진 정치인이 나올 수 없다. 정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오만
윤석열 대통령의 경력은 검사뿐이다. 그러나 좌파정권에 넌더리를 낸 보수우파들은 좌파정권에 맞서 잠시 입씨름한 점을 높이 사 그를 대통령에 뽑아 주었다. 정치이념, 정치능력, 행정능력, 정책능력을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큰 실수였다.
보수우파의 검증을 확실하게 거치지 않았던 윤 대통령은 오만했다. 자신을 선택하고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보수우파의 결단과 응집력을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보수우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의 정치 기반을 만들어 보지 않았던 그가 나라와 자신의 기반인 보수우파를 배반하기 일쑤였다. 무모했다.
그런 그가 검사 직속 부하 한동훈 장관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시킨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었다. 단 하루도 정당 생활을 하지 않고 단 한 번도 선거를 치러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집권여당의 사실상 대표가 되어 총선을 책임지게 됐다. 이런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찾기 어렵다. 3세계 국가나 당장 쿠데타를 한 나라도 아니지 않은가?
윤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잘 들을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한 위원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극한 개인의 정치욕심이었다. 정치의 기본원칙은 물론 험난한 선거를 앞둔 정치상황을 철저하게 무시한 행위였다. 정치가 아니었다.
한 위원장은 공부 재능은 검증되었으나 정치재능은 검증된 적이 없다. 윤 대통령과 비슷하게 입씨름은 잘 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윤 대통령이 굳이 그를 정치판에서 키우려 했다면 총선 후보 경선부터 경험시켜야 했다. 한 위원장이 웬만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가 맡을 자리가 아니다”며 비대위원장을 사양했어야 했다. 나라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과연 어떤 경험과 준비를 했는가? 집권여당의 총선 지휘관을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만도 그런 오만이 없다. 두 사람 모두 정치를 우습게 알았다. 그들은 오만과 욕심 때문에 보수우파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의 정치 감각, 정치능력, 정책능력, 정치 기반을 분명하게 검증하지 않고도 박수를 쳐준 보수우파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말싸움 잘 한다고? 턱없는 것에 열광한 대가는 크다. 윤 대통령에 이어 두 번의 선택 실수가 빚은 결과의 후폭풍은 심각할 것이다.
국민의 힘이 좋아서 표를 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밉고 싫어, 어쩔 수 없이 국민의 힘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는 어떤 선거든 이길 수 없다. 보수우파도 바뀌어야 한다. 세계를 널리 살펴 사려 깊은 판단으로 정치인을 골라 지도자로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선에서 이기기 힘들다. 한국을 정상 국가로 만들 수 없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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