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블링컨 장관의 하나 마나 한 소리

편집국 / 기사승인 : 2023-11-16 16: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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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9일 “러시아와 위험한 군사협력을 확대하는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에게 “건설적 역할”을 요구했다. 대한민국을 방문해서다.


도대체 “건설적 역할”은 무엇인가? 하나 마나 한 소리다. 블링컨도 역할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건설적 역할”은 흔해 빠진 외교 용어일 뿐이다. 실질 내용이 없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웬만한 나라는 국제관계에서 “건설적 역할”을 한다고 자랑한다. 웬만한 고위 외교관들에게 그 용어는 입에 배어 굳은 말버릇이다. 그 상투어로 중국에 무엇을 바라는가? 중국은 어떤 압박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을 헛갈리게 만드는 말의 유희일 뿐이다.

■ 아무나 사용하는 “건설적 역할”

중국 외무장관 왕이는 9월 베이징의 기자회견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의 성공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무엇이 건설적 역할인지 밝히지 않았다.

박진 장관도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아세안 회의에서 왕이에게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데 “건설적 역할”을 해 줄 것을 주문했다.

카타르 외교부는 “카타르가 세계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이 몰려드는 국제 외교의 중심지”라며 국제 갈등 속에서 “건설적 역할”을 한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나라들을 서로 사이좋게 만드는 중재가 건설적 역할이라는 것.

카타르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활동 거점. “이슬람 테러의 배양기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 숭배 집단으로 평가”되는 ‘무슬림 브라더후드’의 공식 후원자, 금융 운영자다. 이집트에서 쫓겨난 무슬림 브라더후드의 과격 지도자들은 카타르로 갔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킨 하마스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 가자에 살지 않는다. 카타르 도하에 산다.

카타르 없이,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생존할 수 없다. 그런 카타르도 국제 무대에서 “건설적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용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데 사용되는지 잘 알 수 있다.

튀르케는 “국제기구들에서 ‘건설적 역할’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 외교부도 국제 사회에서 “건설적 역할”을 강조했다. 아제르바이잔도 마찬가지다.

“건설적 역할”을 왕이도 나름대로 정의했었다. 지난해 12월 중국이 국제 관계에서 “건설적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세미나에서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며 “객관성과 공평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어느 한쪽도 편들지 않는 자세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중국식 “건설적 역할”은 중간에서 눈치 보며 체면이나 차리는 것이다. 그런 중국이 북한에게 압력을 넣고 도발을 억제할 리가 없다.

‘역할의 모호성’이란 용어가 있다. 명료함, 확실성, 예측성이 부족한 역할을 말한다. 국제 관계에서 역할의 모호성이 지적되는 것은 누가 역할의 내용을 결정하느냐의 문제에 가장 먼저 부딪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는 모든 나라에 우선하는 구조나 조직이 없다.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어느 나라도 남에게 “이런 역할을 해라”고 요구할 수 없다. 국가들은 역할과 관련된 외교 정책의 경계와 책임성을 스스로 정해야만 한다.

“건설적 역할”이란 애매한 용어가 막 쓰이는 것도 그 때문. 내용, 경계, 책임성도 없이 사용할 수 있기에 누구나 쉽게 활용하는 것이다.

박진 장관은 여러 전략·역학관계 등을 고려할 때 왕이에게 대놓고 구체적 역할을 요구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국무장관이 그렇게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블링컨은 중국에 대해서 그 정도로 밖에 말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여러 가지 곤란한 처지에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친 중국으로 평생을 보내 왔다. 아들이 자신을 팔아 중국 기업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았다. 그 일부가 돈세탁을 거쳐 자신의 계좌에 들어갔다. 의회가 우크라이나 관련 부패와 묶어 탄핵 조사를 하고 있다. 바이든은 그런 등의 이유로 중국에 꼼짝 못한다.

■ 블링컨도 중국에 꼼짝 못한다

블링컨은 현재 백악관 내각장관인 부인과 함께 평생 클린턴·오바마·바이든에 봉사해 왔다. 그 세력들과 중국에 깊이 엮여있다. 중국을 거스를 수 없다.

블링컨은 펜실베이니아대가 세운 ‘바이든 센터’의 사무총장을 맡아 중국으로부터 큰 기부를 받았다. 그는 국무장관 청문회 때 익명의 기부자 명단 밝히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블링컨은 미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위한 자문회사를 운영했었다. 대 중국 로비스트였다. 2017년 그가 세운 ‘웨스트이그젝’은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기술회사들의 중국 진입을 도왔다. 미국 대학들이 중국으로부터 기부를 받도록 했다. 이런 업적들은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자마자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다.

‘웨스트이그젝’의 주요 인물 15명이 바이든 정부에 포진했다. 국가정보국 국장, CIA 부국장, 법무차관, 국가사이버 국장, 백악관 대변인,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국방부 차관보, 국무장관 선임고문, 재무부 차관보 등. 일개 개인회사에서 정부 요직을 이렇게 두루 많이 차지한 것은 매우 드문 일. 중국을 상대로 로비하던 이들이 중국과 맞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알래스카 회담’은 미국 외교의 굴욕으로 평가된다. 블링컨이 얼마나 중국 앞에서 허약한 존재인 지를 보여준 사건.

2021년 3월 바이든 취임 후 미국과 중국이 첫 고위회담을 가졌다. 블링컨이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들먹였다. “화가 난”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 양제츠가 “15분 이상 소리 높여 장황한 훈계를 했다.” “미국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블링컨은 별 반박도 대꾸도 안했다. “회담은 모욕으로 끝이 났다. 미국 외교관으로서 가장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고도 블링컨은 두 달 뒤 영국 외무장관과 공동회견에서 “우리의 목적은 중국을 견제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그는 중국의 스파이 열기구 풍선가 격추된 뒤 강력한 항의 표시로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바로 중국 외교부가 “블링컨이 방문을 계획한 적이 없었다”고 반박해 망신을 사기도 했다.

그는 유대인임에도 무슬림 브라더후드, 팔레스타인, 이란을 지지한다. 한국에 묶여있던 60억 달러에 이어 이라크에 묶여있던 이란 돈 100억 달러 풀어주기로 한 것도 그다.

그런 블링컨이 한미동맹의 실질 주도자다. 믿기 어려운 인물. 한미동맹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고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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