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인생이 지루할 땐, 덕질을

북에디터 박단비 / 기사승인 : 2023-11-29 0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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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를 타다, 오타니처럼┃저자: 이재익┃도도서가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북에디터 박단비] 인생이 재밌게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실패나 좌절을 경험해도 이 또한 나를 쌓아 올리는 좋은 자양분이 되겠거니 하고 즐겼다. 하고 싶은 일은 항상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먹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들, 계속해서 세워지는 새로운 목표가 흥미로웠다.

 

어느 순간, 이 모두가 사라졌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갑자기 그렇게 됐고,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인가 싶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해탈의 경지에 오른 듯, 삶이 평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끝없는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부정적인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이전에 느꼈던 다채로운 감정과 순간들이 전생처럼 멀게 느껴질 뿐.

 

겪어본 적 없는 변화에 이런 내 상황을 주변에 털어놓기도 했다. 다행히도 한 친구가 내 상태에 정확한 진단명을 내렸다. “너 인생 노잼 시기구나?”

 

나만 알지 못했을 뿐, 생각보다 인생 노잼 시기를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가 들려주는 다양한 사례와 극복기에 묘한 안심과 위로를 받았다.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나에게 이런 조언도 던졌다. “이참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봐. 아님 이럴 땐 덕질이 최곤데.”

 

덕질이라. 친구의 무수한 말 중 이상하게 ‘덕질’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혔다. 덕질을 해본 게 언제였지? 덕질을 하면 어떻더라? 유독 이 단어에 꽂혀 몇 날 며칠을 기웃거리던 나에게 <포르쉐를 타다, 오타니처럼>이 나타났다.

 

이 책은 오타니 덕질로 인생이 바뀐 한 사람의 이야기다. 인생 노잼 시기,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시기에 만난 스포츠 스타 오타니. 처음에는 단순히 그의 플레이에 빠졌지만, 점차 그의 노력과 철학,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반해 그를 애정하고 응원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삶 또한 되찾을 수 있었는지, 그 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고 빠지게 되었는지, 어떤 부분을 닮고 싶다 생각하게 됐는지, 무기력하던 삶 속에 갑자기 덕질에 쏟을 무한한 애정과 에너지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등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야구에 관심이 없는 나도 오타니에 대한 애정이 샘솟을 지경이다.

 

오타니에 푹 빠져 다시 즐거운 삶을 되찾은 저자를 보면, 나도 누군가를 이렇게 열렬히 좋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 진심으로 응원할 때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나 역시 느끼고 싶다. 이게 바로 덕질의 순기능 아닐까?

 

잘은 모르겠지만, 덕질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조금 더 진-하다. 상대가 앞으로도 잘 됐으면 좋겠고, 상대의 삶의 철학이나 열정 등을 닮고 싶어지며, ‘나도 저렇게 열심히(혹은 잘) 살고 싶어’라는 마음이 일렁이는 상태. 상대의 행동, 마인드가 내 삶에까지 깊숙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덕질이 아닐까.

 

내 안에 쌓아있는 장작들만으로는 나를 더 이상 불태울 수 없을 때. 크게 변하지 않는 삶의 쳇바퀴 속에서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이럴 때는 타인의 불타오르는 열정과 노력, 발전 등을 바라보며 나의 장작을 다시 쌓아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갑작스러운 인생 노잼 시기에 빠진 사람이라면, 같은 일을 겪은 저자의 극복담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덕질이라는, 생각보다 재밌고 손쉬운 극복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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