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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2022년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된 제이디 밴스의 첫 연설은 외할머니에게 바치는 서사였다. 거저 고마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짧으나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밴스는 참혹했던 자신의 삶과 보수주의 정치이념을 외할머니와의 절묘한 대비로 연설 속에 녹여 냈다. 평생 열렬민주당 지지자였던 외할머니. 그러나 그녀가 없었다면 공화당 부통령을 눈앞에 둔 밴스의 인생은 갓난아기 때 사라졌을 것이다.
밴스는 미국에도 이런 일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참혹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겨우 40년 전의 일이다. 중서부. 산업이 망해가는 지역을 뜻하는 ‘러스트 벨트’의 고향 작은 도시에는 일자리가 없었다. 값싼 중국 물건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대부분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값싼 노동력을 쫓아 중국으로 떠났다. 얼마 남지 않은 공장들은 낮은 임금의 불법 이민자들로 채워졌다. 주민들은 비참한 가난에 시달렸다. 욕설과 폭력 속에 살았다. 절망한 주민들은 술·마약에 빠졌다. 마약 중독으로 죽는 사람이 자연사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그의 가족도 구렁텅이에 빠진 희생자였다.
밴스는 중·하 노동계층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다. 사회분열, 문화 타락, 정신 피폐 등 경제 쇠퇴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동네와 가족 속에서 절감했다. 가게 점원일 때 사회복지 혜택을 받아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비싼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주의 정책에 환멸을 느꼈다.
■‘밴스’는 세 번째 성이다
그는 중국을 최고의 위협으로 여긴다. 권력을 독점한 워싱턴의 좌파 기득권 세력이 중국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들이 ‘러스트 벨트’를 만들고 소외시켰다고 믿는다. 그러한 소수 엘리트 세력의 정치를 반대하며 불법이민을 막는 포퓰리즘, 미국 산업을 위한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다. 태어나자마자 시작된 혹독한 삶에서 얻은 정치이념이다. 가난은 증오를 낳고 공산주의 혁명의 전사를 만든다는 고정관념과는 정반대다.
밴스를 흙수저로조차 부를 수 없다. 모욕일 수 있다. 아예 어떤 수저도 없었다. ‘밴스’란 성은 기구한 인생역정을 상징한다. 세 번째 바뀐 성.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부모는 갓난아기 때 이혼했다.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곧바로 어머니의 세 번째 남편에게 입양돼 성을 바꾸었다. 그와도 곧 이혼. 여동생과 외할아버지·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들의 성을 따라 밴스가 되었다.
켄터키 탄광 마을에 살던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6살, 13살 때 밴스의 어머니를 낳았다. 일을 찾아 오하이오로 이사했다. 외할아버지는 술 중독자였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마약에 중독됐다. 고의로 전신주에 차를 들이받았다. 병원에서 마약을 훔치다 체포되고 병원에서 잘리기도 했다. 외삼촌, 이모도 문제였다. 가난과 학대는 일상. 마약에 취한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들을 괴롭혔다.
그가 받은 유일한 가족사랑은 외할머니로부터였다. “피도 눈물도 없을 만큼” 엄격했지만 어머니와 늘 싸우던 반항아를 바로 잡아 주었다. 벤스는 고교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크에 파병되는 등 4년을 복무했다. 전역 후 오하이오 주립대를 거쳐 예일대 법대에 갔다. 절망의 구렁텅이를 벗어나 미국 최고 법대를 졸업했다.
이제 미래의 공화당 대통령으로도 꼽히는 정치인이 된 것은 민주당 지지자 외할머니 덕이 컸다. 밴스는 “외할머니가 나를 거둬 준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일”이라고 했다. 그를 키운 할머니도 정치이념만큼은 밀어 넣을 수 없었던 모양. 그는 부통령 후보 지명 연설에서도 외할머니를 말했다: “나의 수호천사였다. 내가 마약 파는 아이들과 어울리자 할머니는 ‘다시 한 번 그러면 차로 치어 버리겠다’며 혼냈다.”
밴스는 연설 도중 어머니를 소개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울었다. 청중들은 “제이디 어머니”를 외쳤다. 연단에서 모자는 굳게 부둥켜안았다. 이제 그녀는 6년째 마약을 끊고 있으며 청소원으로 일한다.
2016년 밴스가 쓴 ’힐빌리의 슬픈 노래’는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 그러나 본질은 위기에 빠진 백인 노동계층에 대한 깊은 분석의 보고서였다. 이 책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변호사·벤처기업인에다 자신처럼 불우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사회운동가였던 밴스가 정치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예일대 동기생은 “밴스는 본능적으로 전혀 좌파가 아니다. 20년 ‘힐빌리의 슬픈 노래’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네플릭스가 방영했을 때 좌파들이 부정 반응을 보였다. 밴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엘리트 좌파사회와 완전 결별했다”고 말했다, 이념 때문에 엄연한 현실도 왜곡·부정하는 그들에게 환멸을 느낀 것이다.
정치인 밴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념성이다. 혹시라도 그가 38세라는 나이 때문에 후보로 선택되었다고 보면 안 된다. 역시 대세는 ‘젊은 정치인’이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나이도 호소력 있는 선거자원. 그러나 그에게는 예비역 해병병장. ‘러스트 벨트’ 노동계층 출신. 미국 정치에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인도계며 예일대 법대 동창인 부인 등 유권자들에게 먹힐 수 있는 장점들이 많다. ‘3년 여 짧은 정치경험’이란 약점을 메꿔주기에 충분하다.
■벽장 속 보수우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밴스가 가장 탄탄한 논리와 흔들림 없는 신념·용기를 가진 보수우파 포퓰리즘 정치인이라고 봤다. 사상·이념 전쟁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선택했다. 밴스는 벽장 속 보수우파가 아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보수우파다. 이념전쟁의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좌파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투사다. 언론 등 좌파들의 어떤 공격도 겁내지 않는다.
한국과는 아주 다르게 미국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보수우파 이념으로 무장하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좌파들과 싸우는 젊은 정치인들이 많다. 밴스는 그 가운데 한명이다.
젊기에 다양한 이념을 유연하게 포용해야 한다고 떠드는 것은 이념의 이중성이다. 밴스는 좌우를 넘나들며 이득만 챙기는 회색주의를 젊음의 특권으로 포장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무늬만 보수우파가 아니다,
그는 이념을 합당한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정책능력을 가졌다. 그것을 적절하고 효율 있게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뛰어난 소통 능력을 갖고 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들이다. 이상한 조어나 유행어로 말장난을 하며 감성에 호소하는 가벼운 정치인이 아니다. 입씨름을 정치무기로 착각하는 한국의 여느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그러기에 짧은 정치경력에도 가장 촉망받는 상원의원이 되고 부통령 후보로 뽑힌 것이다.
밴스는 자본주의를 없애고 세계를 하나의 정부가 통제하도록 만들겠다는 글로벌주의. 성전환 이념, 모든 문제는 인종차별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인종이론 등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한다. 좌파독재를 위한 마스크 강제도 반대한다.
“이념·문화전쟁을 피하지 마라. 오랫동안, 공화당 사람들은 이념·문화전쟁을 선거의 적이거나 약점이라고 걱정하며 피해 왔다. 하지만 유권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마르크스주의에 세뇌당하고 있는지 등을 보고 투표한다. 이기고 싶다면 그런 유권자들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보수우파들은 이념·문화전쟁에서 도망치고 있다. 알고 보니 유권자들은 우리가 이념·문화전쟁에서 싸우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그 싸움이 미국은 물론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밴스의 전쟁을 지켜보자.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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