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간첩 혐의’ 수미 테리와 남편의 정체는…한국이 망신당한 것은 이 부부의 이념을 몰랐기 때문이다

편집국 / 기사승인 : 2024-07-25 15: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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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재미교포 학자 수미 테리가 간첩 혐의로 기소되자 미국에서는 남편이 단연 관심의 초점이다. 남편 맥스 부트의 정치이념·행태와 연구경력 때문. 그래서 수미 테리의 이념도 주목을 받는다.

부트는 미국의 군사개입을 주장하는 ‘네오콘’에다 ‘썩어 문드러진 보수주의: 나는 왜 우파를 떠났나’라는 책까지 낸 유명 좌파다. ‘결코 트럼프는 안 된다’는 운동을 주도해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당을 지원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핵심 가운데 한 명. 좌파 글로벌리즘의 본산으로 꼽히는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었다. 수미 테리도 마찬가지. 미국의 보수우파들은 부부의 그 경력을 놓치지 않는다.

수미 테리는 외교협회와 이념성향이 비슷한 여러 연구소 경력도 있다. 이념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런 기관에 들어가기 쉽지 않았을 터. 남편과 이념이 달랐다면 결혼까지 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문제는 한국 정부나 한국인들은 그녀의 정치이념을 놓쳤는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가? 아니면 ‘미국의 전문가’라는 그녀의 간판과 물욕에 속았는가? 놓쳤든, 무시했든, 속았든 결과는 대한민국 망신이다.

한국 정부의 허술한 공작활동은 국가능력에 대한 폄하는 물론 미국의 선거에 개입했다는 중대한 비판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녀와 남편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미국 언론의 이념성향이나 정치상황을 제대로 분석했다면 그런 창피는 당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념성이 맞다”며 수미 테리와 거래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나 윤석열 정부라면 신중한 판단을 했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주의라면 미국의 대표 좌파 논객과 부인에게 돈을 주며, 좌파 신문에 보수우파 대통령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쓰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심각한 정치판단의 실패며 중대한 외교 결례다. 더구나 한국의 보수언론은 그 부부를 서울에 초청해 공개회의를 열었다. 부부는 정치편향성을 마음껏 펼쳤다. 어떻게 그런 판을 깔아주었는가? 정부 신문 모두 이념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은 유명한 좌파 논객이며 ‘트럼프 증오자’

한국 정부의 금품을 받고 수미 테리가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들의 공동 필자가 부트임이 드러나자 미국의 여론은 들끓었다. 부인과 함께 받은 것이므로 그도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 유대인인 그는 강력한 이스라엘 지지자라 늘 이스라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거기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을 첩자로 공격하던 그의 부인이 정작 스파이라니? 어처구니없다는 반응.

군사연구자인 부트는 2016년부터 줄기차게 트럼프에 관한 왜곡·조작한 내용들을 퍼트려 왔다. 2019년 워싱턴포스트와 CNN에 실린 ‘트럼프가 러시아 간첩인 18가지 이유’는 부트의 대표 조작 글.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을 해킹하라고 러시아에 부탁했다. 헝가리 빅토르 오반 총리와 같은 포퓰리스트를 지지했다”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며 트럼프가 푸틴의 첩자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어떤 증거도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 특검에서 힐러리 선거본부가 자료를 조작한 뒤 변호사를 통해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 등에 흘린 것으로 밝혀졌다.

부트는 2020년 소셜미디어에서 트럼프 측근이며 독일 대사였던 리처드 그리넬도 간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보수우파를 공격하는 워싱턴포스트의 요구에 특화된 고정 기고자다. “만약 트럼프 대신 힐러리가 당선되었다면 코로나 팬데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글을 쓸 정도다.

무엇보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트럼프 백악관 복귀는 미국의 전체 동맹체계는 물론 한미일 3국 동맹에도 심각한 역행”이라는 부부의 글은 한국 정부가 쓴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서울에서도 부부는 비슷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 글은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을 낙선시키기 위한 선거개입이라고 받아들인다. 보수정권이라는 윤석열 정부가 좌파 바이든 정권을 적극 도우려 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방위비 분담 등을 거론하며 트럼프를 비난한 것이 오히려 한국이 경제 강국답지 못하다는 역풍을 몰고 왔다.

부트는 트럼프 비난으로 ‘좌파 투사’라 각광받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는 시들해졌다. 공화당과 보수우파 사이에는 논외로 치부된다. 근거 없는 무책임한 선동 탓이다. 한국정부가 ‘트럼프 증오자’라 불리는 그런 사람에게 좌파의 대표인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트럼프를 비난케 한 것은 상식 밖이다. 지난 5월이면 각종 여론조사 결과나 정치 흐름으로 선거의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때다. 외교부나 국정원 등의 무지 또는 무능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무모했다. 공화당이나 트럼프 진영은 바보가 아닐 것이다. 윤석열 정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부트는 러시아 사람이다. 10세 때 미국으로 왔다. 보수신문에서 기자를 시작했다. 그러나 2002년부터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 등 거의 좌파매체에 글을 썼다. 한때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대선을 돕기도 했으나 무늬만 보수였다. 본질은 네오콘이며 좌파였다.

네오콘(New Conservatism)은 짐짓 보수주의를 내세운다. 실제는 좌파논리인 큰 정부, 글로벌리즘, 개입주의, 지속적 전쟁, 경찰국가 등을 주장한다. 부트 역시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론을 펴며 이라크 전쟁을 적극 찬성했다. 2016년 트럼프 후보 지명 이후 공화당을 비난하기 시작하며 힐러리에 투표했다. 2017년 외교협회 기관지인 ‘포린어페어스’의 글에서 좌파임을 선언했다. 낙태, LGBTQ, 기후변화 등의 이념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 때 좌파 억만장자인 eBay 창립자의 지원 등을 받으며 모든 정책·행동을 비난하는 ‘결코 트럼프는 안 된다’는 운동을 주도했다. 조 바이든과 민주당에 투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거나 필요할 때는 보수주의 입장·태도를 서슴없이 바꾸는 ‘좌파 위선자’들 가운데서도 유명하다. 그의 정치이념의 본질은 미국외교협회 연구원 경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수미 테리도 좌파 연구기관들에서 일했다

미국외교협회는 1921년 설립된 글로벌주의자들의 국제 조직. 미국 등 세계의 정치·경제·외교에 넓고도 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많은 미국 대통령들과 각료들이 회원이다. 협회는 미국 대통령들과 후보들은 물론 외국 정상들도 초청해 연설을 듣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글로벌리즘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초청받지 못했다.

해군 제독 체스터 와드는 16년 동안 회원이었다. 그는 “외교협회의 주요 목적은 미국 주권과 국가독립을 해제하고 전권을 가진 하나의 세계정부에 합치도록 하는 것이다. ‘포린어페어스’는 좌파 글로벌주의 이념을 촉진하고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를 비난한다.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사면 요구, 교육과 경제를 통합하기 위해 정부의 중앙 계획 요구한다”고 실체를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고문이며 회원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글로벌주의를 성취하는 이상적 방법으로 세계정부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부트처럼 수미 테리도 거기의 연구원으로 있었다. 그녀의 정치이념이 주목받는 이유다. 연구기관의 이념에 맞지 않으면 연구원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그녀는 윌슨 센터와 국제전략연구소(CSIS)에서도 일했다. 두 곳 모두 좌파 정치인들과 단체·조직에 크게 기부하는 빌 게이츠 재단,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 록펠러기금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윌슨 센터는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둔 다양·형평·포용(DEI) 이념과 글로벌주의에 따른 불법 난민 수용, 기후변화, 성소수자(LGBTQ)) 등 좌파이념들을 내세우고 있다. “유럽에서 우파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이민자에 대한 탄압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연구원의 글을 실을 정도로 좌파 글로벌리즘을 대변하고 있다.

CSIS 역시 DEI, 그 가운데 특히 형평을 강조한다. “더 많은 DEI는 더 똑똑한 외교와 똑 같다”고 한다. 연구소 책임자는 빌 클린턴 정부의 국방부 차관 등을 지낸 뒤 오바마 인수위원회에서 일했다. 여러 번 국방장관 후보에도 올랐다. 바이든 정부의 국방정책이사회 의장이다. 누가 봐도 민주당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연구기관들에서 일하면서도 한국 보수정부들의 돈을 받고 ‘포린어페어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좌파 매체들에 글을 쓴 수미 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글들의 많은 부분을 한국정부의 요구대로 쓰거나 정부가 준 자료를 베꼈다. 변신에 능수능란해서인가? 이념보다 금품이 더 탐이 나서 그런가? ‘북한 붕괴’ 등 대북 주장도 학자의 소신이 아니라 네오콘인 남편의 영향 탓인가? 돈 받은 대가인가? 북한을 공격했다고 보수우파는 아니다. 그녀는 북한정권을 강하게 비판하면 좋아하는 한국 보수우파의 속성을 악용한 ‘북한문제 장사치’로도 보인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전문가’라는 허울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수미 테리는 그것을 이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다. 이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이념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너무 모른다. 그래서 정부든 언론이든 미국 좌파부부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부가 그들을 이용하려다 되레 톡톡히 망신만 당하는 허술하고 어설픈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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