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칼럼-국제정세의 진실] 미국 공화당이 국민의힘에 주는 경고

편집국 / 기사승인 : 2023-10-19 14: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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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정당은 이념 집단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하는 집단이다. 이념 정체성이 흐릿하면, 상대와 싸우지 않으면 정당이 아니다. 그저 종친회나 동문회 같은 이익 동아리일 뿐이다.

미국 공화당이 그렇다. 한국에서 보수우파 정당이라는 국민의 힘과 비슷하다.

지금 공화당은 미국 의회를 역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18일 재선 하원의원 한명은 “워싱턴 디시는 끝났다. 어떤 것도 하기 어렵다”며 “24년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쫓겨난 케빈 매카시의 후임 하원의장 선출을 둘러싼 극도의 혼돈 때문. 그를 정계은퇴로 내 몰 정도로 분열은 심각하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이 되어 의장을 차지했다. 하원의장은 대통령 승계서열 2위. 하원의 20개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을 지명하는 등 막강한 힘을 갖는다. 매카시는 전체 435명 의원들 가운데 과반수 217명을 확보하기까지 나흘간 15번의 투표를 거쳤다. 165년만의 일. 221명 공화당 의원들 중 20명이 끝까지 반대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쫓겨난 의장이 되고 말았다. 10개월만이다. 1876년 이래 가장 짧게 머문 의장이기도 했다.

매카시가 그토록 어렵게 의장이 되고도 빨리 떠나게 된 이유는 하나다. 보수우파의 가치를 확실하게 추구해 미국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 리노와 유니파티의 공화당 지배

보수주의를 따른다는 공화당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책임을 강조한다. 공화당은 ‘작은 정부’·낮은 세금·시장경제 자본주의·기업 규제 완화·노조 제한·불법 이민 금지 등을 추구한다. 기독교 가치와 전통 가족 가치를 중시하며 낙태·안락사·동성애·성전환 권리 등을 반대한다. 민주당은 평등·형평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국민들 삶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는 ‘큰 정부’를 원한다. 자본주의 해체를 노리며 불법 이민을 받아들인다. 모든 면에서 공화당과는 정반대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좌파들이 미국의 정책을 주도했다. 일부 저항이 있었다. 일부 사소한 조정이 있기는 했으나 좌파 정책의 큰 원칙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공화당이 많은 부분에서 민주당 가치에 동조하거나 정책에 협조한 탓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사회주의로 가는 행진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왜 그런가?

공화당은 보수정당이라 하나 이념 상황이 복잡하다. 8 가지의 다양한 보수주의가 있다고 한다. 그런 공화당에 무늬만 보수우파라는 ‘리노(Republicans in name only)’들이 있다. ‘유니파티(Uniparty)’라 불리는, 세계를 하나의 정부를 만들려는 좌파 글로벌주의자들에 협조하는 무리가 있다. 보수 흉내만 낼뿐 ‘중도’ ‘초당 정치’라는 허울 속에 민주당 등 좌파에 굴복, 협조하는 세력들이다. 그들은 월스트리트, 구글, 페이스북, 블랙락(세계 최대 투자회사)등 좌파 세력들과 군산복합체의 기부를 받으며 로비를 한다. 보통의 미국인들에 충성하지 않는다.
공화당은 오래 동안 리노와 유니파티가 지도부를 장악해 왔다. 상당수가 그들을 따른다. 분열하고 허약할 수밖에 없다.

■ 공화당의 기질, 행태는 민주당과 너무 다르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개인 목표 외에 이념의 목표를 갖고 있다. 하나의 이념 아래 그들은 똘똘 뭉쳐 한 몸이 된다. 민주당에는 ‘무늬만 좌파’는 극히 드물다. 민주당의 유니파티는 그들의 이념 속으로 공화당 의원들을 끌어들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문제나 경제·외교 실정에 대해 모두 나서 강하게 변명한다.

그러나 리노나 유니파티인 공화당 정치인들은 개인 목표와 개인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저마다 다른 정치 이념을 대표하니 단결하지 않는다. “공화당을 통일하는 것은 고양이를 몰고 다니는 것과 같다 – 화내는 고양이, 수동적 고양이, 욕심 많은 고양이, 어리석은 고양이 - 큰 도전이다”라고 할 정도다. 힐러리 클린턴 선거 팀이 조작한 러시아 유착설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에 몰릴 때 일부 의원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공화당은 돈을 원하나 민주당은 권력을 원한다. 공화당은 돈을 챙기기 위해 권력을 이용한다. 민주당은 권력을 갖기 위해 돈을 활용한다. 그래서 민주당은 돈도 벌고 권력도 얻는다. 그 권력으로 정책을 만들어 끌고 나간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계획을 막으려는 공화당의 노력을 무시한다. 그들은 통일된 이념 목표를 거침없이 공격적으로 추구한다.

리노나 유니파티들은 돈은 벌지 모르나 권력을 잡지 못한다.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의지도 힘도 모자란다. 국민 지지로 선거에서 이겨도 권력 행사에는 실패한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공약을 버린다. 유권자를 무시한다. 민주당과 언론, 각종 좌파 단체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그들을 겁낸다. FBI·CIA 등 워싱턴 기득권과 야합한다. 이들과 민주당 등 좌파세력들의 회유·협박에 쉽게 굴종한다. 양보를 넘어서 항복한다.

그래서 민주당은 소수당이 되어도 협상 주도권을 쥔다. 공화당은 다수당이 되어도 민주당을 제대로 이기지 못한다. 보수우파 정책을 밀고 나가지 못한다.

미국인들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인 오바마케어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당선과 함께 민주당은 밀어붙였다. 2010년 선거 때 공화당은 오바마케어 폐지를 약속했다. 유권자들은 공화당을 상·하 양원 다수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12, 14, 16년 똑 같은 약속에 똑 같은 지지가 반복됐다. 그러나 공화당은 폐지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언론 등 좌파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지지층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공화당은 늘 그랬다.

■ 20명의 혁명

드디어 2022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이 되었다. 20명 의원들은 하원 원내대표 매카시와 상원대표 미치 매코널이 보수우파 이념을 포기하고 미국인들과 당원들을 속이며 배신해 왔다고 판단했다. 이제 진정한 보수우파 의장을 뽑겠다고 결단했다. 국민들과 당원들의 민심을 따랐다.

공화당은 지지기반 민심과는 동떨어진 정치를 해 왔다. 보수우파들은 공화당이 오래 동안 자신들을 바보처럼 여겨 온 것에 분노했다. “미국의 적들이 민주당을 장악하고 공화당을 통제된 반대파로 만들도록 협조했다”는 것. “좌파에 맞서 강력하게 싸울 인물을 원한다”는 국민과 당원들의 염원이 의장 선거에 반영됐다.

15차례 투표 끝에 매카시는 항복했다. 바이든 정부의 채무한도 무제한 증가 방지 등 큰 정부를 막기로 했다. 푸틴-트럼프 유착 허위 조작, 바이든 부자의 중국·우크라이나 등 비밀 거래, FBI 등 검은 정부의 정치무기화, 바이든 정부와 트위터·페이스북 등 빅테크 연합세력의 정치검열, 마스크·백신에 반대하는 학부모에 대한 법무부 수사 지시 등을 조사하는 위원회들을 설치키로 했다. 특히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사건이 담긴 4만 시간 영상 테이프를 모두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숨겨 온 것. 약속을 어길 경우 의원 1명이 의장 사퇴를 발의하는데 동의했다.

매카시는 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테이프를 폭스 TV의 앵커 터커 칼슨에게만 주는 등 일부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단 한번 방송 내용은 국가전복 폭동이라는 민주당 주장과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큰 파문이 일었다. 다름 아닌 공화당 리노들이 들고 일어났다. 폭스 경영진들이 가세했다. ‘트럼프 죽이기’였다. 더 이상 공개는 중단됐다. 폭스는 미국 시청률 최고의 칼슨을 잘랐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매카시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다.

매카시는 심각한 부패가 드러난 바이든 탄핵에 소극적이었다. 연방 지출 대폭 감소와 국가기관 전면 개편에도 나서지 않았다. 결정타는 매카시가 민주당과 합의하여 연방 정부폐쇄를 피하기 위한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키기로 한 것. 매카시는 리노와 유니파티를 극복하지 못했다. 자신의 리노 본능을 결코 버리지 않다가 축출의 비운을 겪고 말았다.

■보수주의를 부끄러워하는 국민의 힘

하원의장 선거를 둘러싼 공화당의 혼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념 정체성이 흐릿한, 강한 상대와 싸울 의지가 약한 정당이 어떻게 되는지를 공화당 역사는 보여준다. 국민의 힘에게 중요한 반면교사다.

국민의 힘은 공화당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이념 정체성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의문을 갖는다. 그들이 진정한 보수주의가 뭔지를 알고 있는 지 의심한다. 그들은 “세계정치에서 좌우 구분은 없어졌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지배되고 있다. “좌우를 넘나들어야 열린 정치인”이라며 겉멋 부리는 의원들이 많다. 보수주의자임을 내세우는 것이 부끄러운가? 좌파를 좌파로 부르는 의원들을 보기 어렵다. 당 지도부는 무능하고 약하다. 악착같은 야당에 맞서 싸울 의지도 힘을 가진 의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지층 민심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무분별한 이념 집산의 결과다.

그렇게 모호하게 분열되고 허약해서 2024년 총선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20년의 대참패가 반복될까 걱정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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