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충격에 과학계는 ‘멘붕’…“국가경쟁력 저하” 우려 속 집단 반발 조짐도

최혜진 기자 / 기사승인 : 2023-08-30 18: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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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현장과 소통 없는 삭감 추진 안타까워”…현장에선 연구과제 취소 등 파장 현실화
야당 “국가가 필요할 땐 연구자에게 손 내밀더니 이제와 카르텔 운운하며 욕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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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내년도 연구개발(R&D) 분야 예산 대폭 삭감논란입니다.

 

정부는 지난 29일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R&D 분야 예산을 올해 올해 311000억원에서 52000억원, 16.6% 줄어든 259000억원 규모로 책정했는데, 과학계와 야당의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R&D 예산 삭감에 대한 정부여당과 과학계야당의 입장을 취재했습니다. <편집자주>

 

  ▲참고 이미지 사진 = 픽사베이

 

[뉴스밸런스 = 최혜진 기자] 정부가 1일 국회에 제출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분야 예산이 대폭 축소된 데 대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비롯한 과학계가 집단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과학계에서는 R&D 예산이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줄어든 것도 그렇거니와, 올해 예산 규모 대비 16.6%나 크게 줄인 파격에 큰 충격을 받은 형국이다. 강도 높은 R&D 예산 삭감 소식에 현장 연구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당장 내년 연구비 확보가 불투명해져 노후 장비 유지‧보수는 물론 연구 자체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고, 이대로라면 국가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과학계 전반에서 쏟아지고 있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계 예산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타당성을 고려하며 마련한 방안인데 한순간 전면 백지화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맞는지 의문이 들고, 지식노동자인 출연연 과학자들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연구현장과 소통없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30여년간 출연연에 근무하다 퇴직한 이모(60)씨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시대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추격도 하고 격차도 줄여야 할 중대한 시기에 놓여 있다”면서 “이를 외면한 채 ‘R&D 카르텔을 타파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기초연구 분야 R&D 예산을 6.2%나 깎고 출연연 예산에서 10.8%를 깎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타뜨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대 과기원 학부 총학생회를 비롯한 포스텍(POSTECH) 총학생회, 서울대 자연과학대·공대 학생회, 고려대 총학생회 등 7개 이공계 학생회는 지난 28일 공동 성명서를 통해 “R&D 예산 삭감은 연구 환경을 급격히 악화시키고, 연구몰입 환경에 지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예산 삭감의 전면적인 재고를 촉구했다.

이들 기관 및 대학은 국내 R&D 중추 역할을 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R&D 예산 삭감 사태로 인한 내년 연구비 확보 불확실성에 따라 기능 수행에 적잖은 타격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공계 학생을 비롯한 연구계 또한 연구자 노조를 중심으로 이번 사태를 '정치적 목적과 수사(修辭)에 종속된 과학기술정책의 말로' 등으로 비유하며 연일 반대 성명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연구 지속성부터 정부가 강조해 온 도전적 연구 모두 이번 예산 삭감 수준에서는 확보 및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 지속성이 깨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전자통신연구원노동조합 제동국 위원장은 29일 C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연구 과제를 5년, 10년 과정으로 수주를 받는다"며 "이미 확정된 3년차 연구임에도 예산이 삭감된다는 통보를 받고 과제를 취소해버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R&D 예산은 올해 기준 31조1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이나 삭감됐다"며 "국가 미래를 위해 대폭 늘려도 모자란 필수 예산을 무분별하게 삭감했는데 제대로 된 설명도, 기준도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회 과학방송기술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지난 22일 원내정책조정회의 발언을 통해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에)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졸속으로 진행한 밀실 예산”이라고 꼬집었다.

조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원래 R&D 예산은 전문가가 심의하고 과기부와 기재부 순으로 예산안을 짜도록 하는 게 과학기술법 12조에 포함된 내용”이라면서 “그런데 6월말 느닷없이 대통령이 R&D 카르텔을 운운했고, 전문가와 함께 수개월 심의한 예산안을 백지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권한이 없는 기재부까지 달려들어 불법과 월권이 판치는 복마전이 됐다”면서 “더 나아가 정부는 자신들의 불법 허물을 감추기 위해 국가에 헌신한 과학자들을 욕보이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대통령의 R&D카르텔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것도 언급했다.

그는 “감염병 대응 R&D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R&D는 모두 국가적으로 필요한 연구였고 국가는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라며 “국가가 필요할 때는 연구자에게 손 내밀고, 이제와 카르텔 운운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조 의원은 “그러면 이제 앞으로 어떤 연구자가 국가의 요구에 헌신하겠는가”라면서 “아무리 전 정부기 밉다고 해도, R&D 예산까지 전 정부 탓, 연구자 탓 해서 되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묵묵히 연구활동을 하는 연구자와 과학자들에게 사과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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