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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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는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유일하게 두 번 수상한 작가다. 본명으로 발표한 <하늘의 뿌리>로 한 번,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으로 또 한 번. 그가 이렇게 정체성을 바꿔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점에 나는 늘 호기심을 느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나에게 온 책이 바로 그의 또 다른 소설 <흰 개>다.
<흰 개>는 현실과 허구 경계를 넘나드는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자신과 그의 아내이자 할리우드 배우 진 세버그는 물론이고, 마틴 루터 킹, 말론 브란도, 로버트 케네디 등 당대 인물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 한 시대 르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의 주된 배경은 1968년 미국이다. 1968년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가 잇따라 암살당한 해, 프랑스 파리 5월 혁명과 체코 ‘프라하의 봄’으로 격동의 시대를 알린 해다. 미국 전역에서는 베트남 반전 시위와 함께 흑인 분노가 폭발했고, 기득권의 폭력적인 억압이 이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로맹 가리는 변화를 향한 열망과 절망이 역사 표면으로 동시에 솟구치던 그 한복판에서, 미국 사회가 앓고 있던 깊은 정신적 질환을 냉소적으로 포착한다.
이야기는 로스앤젤레스 집에 개 한 마리가 흘러들면서 시작된다. 폭우로 물난리가 난 어느 날, 그가 원래 키우던 개 샌디가 회색빛 셰퍼드를 데려온다. 가리는 순하고 영리한 이 개에게 ‘바트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식구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바트카는 흑인만 공격하도록 길들여진 ‘흰 개’였다. 당시 ‘흰 개’는 흑인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 남부에서 경찰이 흑인 체포를 돕도록 훈련시킨 개를 일컫는다.
그러나 가리는 이 사실을 알고도 바트카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 개가 태어날 때부터 흑인을 증오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길들여졌다면, 되돌리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안락사 유혹을 몇 번이나 뿌리치고, 이 개를 재교육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바트카의 재교육 담당을 맡게 된 조련사는 동물원의 흑인 사육사 ‘키스’다. 바트카는 키스를 향해서도 공격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키스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바트카 조련에 매달린다. 그의 목표는 바트카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백인을 공격하는 개로 다시 길들이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방식을 답습하는 아이러니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들이 유대인 게슈타포가 되기를 꿈꾸고, 흑인들이 흑인 KKK가 되기를 꿈꾼다는 건 아무래도 슬픈 일이다.”(213쪽)
로맹 가리의 이 말은 특정 민족이나 집단을 향한 비난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라, 중오가 증오를 낳는 악순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폭력을 폭력으로 갚으려는 순간, 정의가 또 다른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
소설 속 1968년의 혼탁한 흑역사는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더 깊어진 미국 사회 분열도, 이스라엘 정부가 가해 논리를 되풀이하며 중동에서 명분 없는 군사행동을 벌이는 것 모두 ‘흰 개’의 광기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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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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